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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Security Lab
[스크랩] 대기업이 아이디어를 훔쳐갔을 땐 이렇게 대처하세요 본문
아는 게 힘이라고? 누가 그래?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다. 10개를 알고 1개를 실천하는 사람보다 알고 있는 5개를 전부 실천하는 사람이 더 낫다. 법 지식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노력하면 유용한 법 지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 내 권리를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아는 것보다 알고 있는 지식을 실천하는 실행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장식에 불과하다.
1년 전, 모 협회에서 요청이 들어와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스타트업 CEO들을 대상으로 한 법률 강의였다. 이 강의의 수강생 중 한 명인 최상명 씨가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자기 아이디어를 대기업이 함부로 도용했다는 거였다.
상명 씨는 겉으로 봐선 대학생처럼 보였는데 명함을 보니 CEO라고 되어 있어 나이를 물었더니 30대 중반이었다. 상당한 동안이었다. 상명 씨는 온라인 마케팅 컨설팅을 주로 하는 스타트업 B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직원은 본인 포함 4명이었다.
“강의 때 변호사님이 예시로 들어주셨던 사례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상명씨는 ‘모바일과 SNS를 활용한 회원 충성도 제고 프로모션 기법’을 만들었고, 이를 6개월 전 대기업 A사 패션사업부에 제안했다. A사 패션사업부 주타깃 고객인 20-30대 여성들을 겨냥해서 만든 위치기반 서비스, 비콘, SNS, 리워드 방식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프로모션 방식이었다. 온라인 프로모션은 사실 비슷비슷한 컨셉들이 많아서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데 상명 씨가 제안한 방식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상명 씨는 특별한 연고가 없어 A사 패션사업부 대표메일로 자신이 소개하고픈 프로모션 기법이 있다고 제안했는데, 그쪽에서 연락이 와서 A사를 방문하고 아이디어를 소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쯤에서 나는 내가 상명 씨가 만족해 할 만한 해결책을 주지 못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큰 기업에 제안했는데, 상대방이 표면적으로는 관심 없다고 해놓고서 나중에 이를 따라한 사건. 의외로 아주 흔한 일이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함부로 따라한 상대를 대상으로 공격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제도가 있긴 있다. 바로 ‘특허’다. 내가 그 아이디어에 대해 특허를 출원해서 등록까지 받아놓고 있다면 내 아이디어를 딴 사람이 함부로 쓸 경우 특허침해를 이유로 민, 형사상 공격이 가능하다. 하지만 원천기술이 아닌 사업적 아이디어, 기획 등은 별도로 특허출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설사 특허출원을 했다 하더라도 등록까지 되는 예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특허가 없으면 효과적인 공격을 못한다는 것.
다만, 특허가 아니라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영업비밀’이다. 하지만 영업비밀을 이유로 공격을 하려면 그 전에 갖춰 놓아야 할 요건이 많은데 그게 만만치 않다. 나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려고 결론을 서둘러 말했다.
“A사가 상명 씨 아이디어를 몰래 베꼈다는 걸 문제 삼으려 하시는 것 같은데, 그 프로모션 방식이 특허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죠? 사실 그런 경우까지 특허로 등록하는 게 쉽지는 않죠. 좀 아쉽긴 하지만 특허로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아이디어 침해를 이유로 공격하기는 참 어렵답니다.”
그러자 상명 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특허로 공격할 거 아닌데요? 영업비밀로 문제 삼아 보려는데요?”
아하~ 영업비밀!!
그래도 이 분야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이야기가 좀 편할 것 같았다.
“영업비밀로 공격한다라... 물론 가능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갖춰야 할 요건이 좀 많은데...”
영업비밀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프리젠테이션 내용이 영업비밀에 해당된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알렸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때 상명 씨가 무표정한 얼굴로 한 출력물을 내 앞에 내놓았다. 당시 A사 담당자들에게 제공했던 프리젠테이션 자료였다. 자료 하단에 “본 제안서 상의 비즈니스 모델은 당사의 영업비밀로서 보호되고 있음을 이 제안서를 받아보는 분들은 충분히 인지합니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
앗! 이런 걸 받아두었다고? 이 정도로 준비를 하기는 쉽지 않은데.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 잘하셨네요. 그런데 말이죠. 사실 이 정도 문구는 그쪽에서 못 봤다고 우기면 좀 곤란해집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지만 NDA라고 비밀유지약정을 맺어두는 게 필요한데요...”
내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가 핵심적이라 유출되는 것에 위험성을 느낀다면 NDA(Non Disclosure Agreement ; 비밀유지약정서)를 제시하고 상대방에게 사인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을이 NDA 작성을 요구할 경우 갑은 ‘웃기는군. 안 듣고 만다.’면서 문전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을에게 호기심과 매력을 충분히 느끼는 갑이라면 ‘어라? 도대체 뭐길래 이 정도 배짱을 부리는 거지? 한번 들어보고 싶군.’이라는 갑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명씨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비밀유지약정’이라고 적힌 문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앗! 이런 것까지!
“A사에서 이걸 순순히 써주던가요?”
“이걸 써야만 전체 그림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더니 실무 담당자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써주던데요?”
실제로 비밀유지약정서 끝 부분에는 A사 실무자의 서명이 있었다. 대단한 준비성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음, 준비를 많이 하셨군요. 그런데 우리가 대외적으로 ‘이건 우리 영업비밀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실제 그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된다는 점을 밝히는 것’은 별개 문제랍니다. 특허는 특허청에 출원해서 등록하는 대외적인 절차가 있지만 영업비밀은 순전히 내부적으로 관리하는 거라 나중에 입증하는 데에 문제가 있거든요.”
그러자 상명 씨는 다시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자료 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클리어 파일 형태로 정리된 문서였는데 겉장에 ‘Trade Secret’(영업비밀)이라는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회사 내부적으로 영업비밀 관리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나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혹시 이 영업비밀을 외부적으로 등록하는 것까지 해놓으신..”
“아, 이거 말씀하시나요?”
상명 씨는 다시 서류 하나를 내 앞에 꺼내 놓았다. 특허청 산하 한국특허정보원 영업비밀보호센터(https://www.tradesecret.or.kr)가 발급한 영업비밀 원본증명서였다.
영업비밀인지 아닌지 나중에 논란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저렴한 비용을 내면 회사의 영업비밀을 등록해 준 다음 유사시에 이를 증명해 주는 바로 그 제도를 사용한 것이다. 대기업도 아닌 스타트업에서 이 정도로 완벽하게 영업비밀에 대한 보호조치를 해 두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하기 진짜 쉽지 않은데, 어떻게 이런 조치를 다 해놓으셨나요?”
“이렇게 해 놓으라고 변호사님이 강의 때 말씀하셨잖아요? 전 배운 대로 했는데요?”
상명 씨는 노트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상명 씨가 외부에서 들었던 강의 내용들을 정리해 놓은 것인데, 내 강의 부분을 펼쳐서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무서운 사람일세. 이거 장난이 아닌데...?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상명 씨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6개월 전, A사는 상명 씨의 마케팅 제안을 듣고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컨셉트 자체는 흥미롭지만 우리 회사에서 적용하기는 적절치 않다.’
‘비용을 들여서 이런 마케팅을 했을 때 과연 ROI가 충분히 나올지 확신이 안 선다.’
2시간에 걸쳐 열심히 설명만 하고 상명 씨는 별 소득 없이 그 미팅을 끝내야 했다. 그 뒤로 A사로부터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A사 패션사업부는 대대적인 고객 대상 이벤트를 실시했는데, 이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언론으로부터 최신 IT기술을 절묘하게 활용해서 고객 눈높이를 맞춘 성공적인 이벤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업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여기 인터뷰 기사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제 프리젠테이션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상명 씨가 보여 준 기사에는 A사 마케팅 팀원 여러 명이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밝게 웃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상명 씨가 원하는 게 뭔지요?”
상명 씨는 오랜만에 얼굴에 미소를 띄며 말했다.
“제 아이디어를 제대로 평가받는 겁니다. A사가 대박을 낸 이 아이디어는 제 아이디어입니다. 제게 로열티를 주든지 아니면 제 아이디어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대외적으로 밝혀주기 바랍니다. 저희 회사로서는 그 자체로도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고는 당시 자신 강의노트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럴 경우 내용증명을 보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변호사님의 장기라고 그때 강의 끝나기 10분 전쯤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의뢰하러 왔습니다.”
그래, 이 정도로 준비가 잘되어 있는데, 못할 일이 무어란 말인가? 나는 내용증명을 작성해서 A사로 발송하기로 했다.
수신 : A 주식회사
주 소
대표이사 김 0 0
발신 : 기업분쟁연구소 변호사 조 우 성
주 소
제목 : 영업비밀침해 사실 및 법조치 통보에 대한 건
1. 귀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발신인은 B 주식회사(대표이사 최상명, 이하 ‘의뢰인’이라고만 합니다)의 위임을 받고 귀사에 이와 같은 통보서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2. 의뢰인은 2015. 2. 4. 귀사 패션사업부 김00 차장, 박00 과장에게 ‘모바일과 SNS를 활용한 회원 충성도 제고 프로모션 기법’에 관한 마케팅 아이디어(이하 ‘본건 아이디어’라 합니다)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3. 본건 아이디어는 의뢰인의 중요한 영업비밀이라 회사 내에서 영업비밀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한국특허정보원에 영업비밀로 등록까지 되어 있습니다(별첨 1 : 영업비밀 원본증명서).
4. 의뢰인은 본건 아이디어가 영업비밀이라는 점을 당시 프리젠테이션 자료에 명시적으로 기재하였고(별첨 2 : 프리젠테이션 자료), 혹시라도 모를 영업비밀 부당유출을 막고자 귀사 담당자와 사이에 비밀유지약정(NDA)을 체결하기까지 하였습니다(별첨 3 : 비밀유지약정서).
5. 귀사 담당자는 의뢰인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뒤 본건 아이디어는 귀사에게 적용될 가능성이 없다는 취지로 답변하였던 바, 의뢰인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6. 한편 최근 귀사는 귀사 고객을 대상으로 한 *** 이벤트와 홍보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펼쳤고, 이는 대단한 효과를 본 것으로 언론에 여러 차례 기사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의뢰인이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귀사의 위 이벤트와 마케팅은 의뢰인이 귀사 담당자에게 제안했던 본건 아이디어가 그대로 반영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별첨 4 : 귀사 이벤트와 본건 아이디어의 비교 자료표).
7. 귀사 행위에 대한 법적 평가
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줄여서 ‘부경법’이라고만 합니다) 제2조 3호 라목(계약관계 등에 따라 영업비밀을 비밀로서 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영업비밀의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그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에 따르면 귀사의 행위는 명백하게 의뢰인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행위입니다.
나. 이처럼 영업비밀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적으로 금지청구의 대상이 되는(부경법 제10조) 한편, 손해배상청구의 대상도 됩니다(부경법 제11조). 의뢰인은 현재 귀사의 영업비밀침해로 인한 손해액을 산정 중에 있습니다.
다. 아울러 영업비밀 침해행위는 부경법 제18조 2항에 따르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행위라는 점을 명백히 알려 드립니다.
8. 의뢰인의 요구사항
이에 의뢰인은 귀사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가. 의뢰인의 영업비밀을 귀사가 정당한 절차 없이 함부로 사용하게 된 경위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나. 향후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후속 조치를 할 것인지에 대해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다. 위 가. 나항에 대해 본 통보서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 발신인에게 서면으로 의견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9. 의뢰인은 귀사와의 이건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만약 귀사가 위 8.항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않을 경우 부득이 위 7.항에 기재한 바와 같은 민, 형사상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밝히오니 이 점을 주지해주시기 바랍니다.
10. 이상입니다.
2015. 9. 10.
발신인 기업분쟁연구소
담당변호사 조 우 성
통보서를 작성할 때 의뢰인의 증빙자료가 부족할 경우 작성에 애를 먹지만 이 사건은 확실한 증빙자료가 차고 넘쳐서 말 그대로 술술 문장이 나왔다.
통보서를 보낸 지 며칠 만에 A사 법무팀에서 연락이 왔다. A사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픈 생각이 있으며, 필요한 후속 조치를 위해 만남을 갖자고 했다. 나와 상명 씨는 A사를 방문해서 논의한 끝에 다음과 같이 합의를 봤다.
1항 : A사와 B사는 본건 아이디어 사용과 관련한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한다.
2항 : A사가 본건 아이디어를 사용한 것 관련해서 컨설팅 용역비 명목으로 0천만 원을 지급한다.
3항 : 대외 홍보자료에 본 아이디어는 A사와 B사가 공동으로 창안한 것임을 밝히며, B사가 이를 자사의 레퍼런스로 활용하는 데 있어 A사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기로 한다.
4항 : B사는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A사에게 일체의 민,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다.
아는 만큼 실천해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한 상명 씨. 그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그가 참 대단해 보였다. 나는 그 후 B사와 고문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B사는 항상 나를 긴장시키는 고문기업이다. 내 모든 말을 전부 다 기억할 것이 분명한 상명 씨가 대표로 있으니 말이다.
Ref1. http://www.jowoosung.com/
Ref2. http://www.ziksir.com/ziksir/view/2863